눈앞에서 서버 수백 대가 돌아가는 데이터센터 안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기계가 내는 소음이 머리까지 울릴 정도로 컸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팬이 거의 돌지 않고도 조용하게 운영되는 새로운 냉각 방식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기가 덜 들면서도 훨씬 강력한 컴퓨터를 안정적으로 돌리기 위해, 서버를 아예 액체 속에 담가 식히는 액침냉각이라는 기술이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술은 특히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고성능 컴퓨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존 공기만으로 식히는 방식으로는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액침냉각을 만드는 회사, 액침냉각에 쓰이는 냉매를 만드는 회사, 그리고 이 기술을 실제로 사용할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동시에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액침냉각이란 무엇이고 왜 주목받는가
액침냉각은 말 그대로 컴퓨터 서버나 부품을 특수한 액체 속에 담가서 식히는 방식입니다. 이 액체는 전기가 통하지 않도록 설계된 유전체 냉매라서, 전자 부품과 직접 닿아도 합선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서버에서 발생한 열이 액체로 빠르게 전달되고, 이 액체가 다시 식으면서 열을 외부로 내보내는 구조입니다.
기존 공랭식 시스템은 뜨거운 공기를 팬으로 빼내고, 차가운 공기를 다시 넣어주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최근 AI용 칩은 소비 전력이 수백 와트에 달할 정도로 커지면서, 공기만으로는 효율적인 냉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열을 훨씬 빨리 옮길 수 있는 액체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바뀌고 있습니다.
액침냉각 시장이 성장하는 주요 이유
미국 액침냉각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하고 있습니다.
AI와 고성능 컴퓨팅 칩의 폭발적인 증가
엔비디아의 H100, B200 같은 GPU, 그리고 다른 AI·HPC(고성능 컴퓨팅) 칩들은 매우 높은 전력을 사용합니다. 이 칩들이 잔뜩 들어간 서버 랙 하나에 수십 킬로와트의 전력이 몰리기도 합니다. 공기를 강하게 돌려서 식히려면 팬과 공조 장비에 들어가는 전기도 크게 늘어납니다.
액침냉각은 칩이 담겨 있는 액체가 직접 열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칩을 넣고도 안정적으로 냉각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AI 서버를 고밀도로 배치해야 하는 데이터센터에서는 액침냉각이 점점 현실적인 선택이 되고 있습니다.
에너지 효율과 PUE 개선
데이터센터는 서버보다 냉각 장비에 들어가는 전기도 상당히 많습니다. 전체 전력 효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PUE(Power Usage Effectiveness)라는 수치를 많이 쓰는데, 이 값이 1에 가까울수록 좋습니다. 일반적인 데이터센터는 PUE가 1.3~1.5 정도인 곳이 많지만, 잘 설계된 액침냉각 시스템은 1.05 안팎까지 낮출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같은 컴퓨팅 성능을 내면서도 전체 전력을 30~50% 정도까지 절감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전기요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이터센터 입장에서는 운영비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장점입니다.
지속가능성과 ESG 요구
기업들은 요즘 환경과 관련된 책임을 강조하는 ESG를 중요한 경영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는 전기도 많이 쓰고, 일부 방식은 냉각을 위해 물도 많이 사용합니다. 액침냉각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도움이 됩니다.
- 팬을 적게 쓰기 때문에 전력 사용량 감소
- 증발식 냉각 등에 비해 물 사용량을 줄일 수 있음
- 서버를 더 빽빽하게 배치해 공간을 절약
이런 요소 덕분에, 액침냉각은 친환경적인 데이터센터를 만들고자 하는 회사들에게 매력적인 기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공간 효율성과 서버 수명 연장
액침냉각은 서버 랙을 더 높은 전력 밀도로 운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같은 건물 안에 더 많은 연산 능력을 넣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부동산 비용이 비싼 지역일수록 이 장점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또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쉬워서, 서버 부품이 갑자기 뜨거워졌다가 식었다가 하는 온도 변화가 줄어듭니다. 온도 변화가 크면 부품에 스트레스가 쌓여 수명이 줄어드는데, 액침냉각은 이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 수명 연장 정도는 설계와 운용 방식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단순히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 오래 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형 클라우드 회사들의 도입 움직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과 같은 하이퍼스케일 클라우드 기업들은 이미 다양한 형태의 액체 냉각을 테스트하거나 부분 도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직접 칩에 냉각수를 대는 방식이고, 일부는 실제로 액침냉각을 사용하는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이런 대형 고객이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면, 관련 기술과 시장이 빠르게 커질 가능성이 큽니다.
액침냉각 시장이 안고 있는 어려움과 위험
유망한 기술이라고 해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액침냉각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높은 초기 투자 비용
기존 공랭식 데이터센터를 그대로 두고 일부만 액침냉각으로 바꾸려면, 설계 변경과 특수 장비 도입이 필요합니다. 초기 설치 비용이 공랭식보다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기적으로 전기요금과 운영비를 줄여서 만회할 수 있지만, 당장 눈앞의 투자 부담 때문에 도입을 망설이는 곳도 있습니다.
표준화 부족과 운영 경험의 한계
공랭식 데이터센터는 오랫동안 축적된 표준과 경험이 많지만, 액침냉각은 아직 발전 중인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점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 어떤 냉매를 사용할 것인지
- 서버와 랙을 어떤 형태로 설계할 것인지
- 유지보수 시 부품을 어떻게 꺼내고 교체할 것인지
이런 부분에 대한 업계 표준이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각 회사가 제각각 다른 방식을 쓰게 되면, 부품 호환성과 장기 유지보수 측면에서 부담이 생길 수 있습니다.
냉매의 특성과 환경 문제
액침냉각에 쓰이는 냉매는 전기가 통하지 않고, 인화성이나 독성, 환경 영향도 고려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3M의 Novec 계열 냉매가 많이 거론되었지만, 3M은 PFAS 계열 물질에 대한 규제와 환경 문제 등으로 2025년까지 해당 계열 제품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른 회사들이 대체 냉매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상황입니다.
새로운 냉매는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누출 시 대처 방법, 장기간 사용 시 안정성 등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위험도 있습니다.
기존 데이터센터의 전환 속도
현재 운영 중인 데이터센터는 대부분 공랭식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를 액침냉각으로 바꾸려면 건물 구조, 전력 배분, 배관, 유지보수 방식 등 많은 부분을 손봐야 합니다. 이런 대규모 변경은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안정성을 중시하는 운영자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술 자체는 좋아도, 실제 도입 속도는 생각보다 더딜 수 있습니다.
경쟁 심화와 기술 선택의 어려움
액침냉각 시장이 커질 가능성이 보이자, 기존 대형 인프라 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떤 회사의 기술이 실제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 어떤 기업이 인수되거나 시장에서 밀려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한 번 선택한 설계가 나중에 발목을 잡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미국 액침냉각 관련 기업과 핵심 플레이어
주식 시장 관점에서 보면, 액침냉각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순수하게 액침냉각만을 하는 상장 기업은 많지 않고, 대부분은 데이터센터 인프라나 화학, 에너지 같은 다른 본업을 가진 대기업들이 관련 기술을 함께 개발하고 있습니다.
액침냉각 시스템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들
먼저 액침냉각 장비와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직접 제공하는 기업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Vertiv (티커: VRT)
Vertiv는 데이터센터 전원과 냉각, 랙, 모니터링 솔루션을 폭넓게 제공하는 기업입니다. 액침냉각뿐 아니라 직접 칩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액체 냉각 솔루션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AI 서버를 위한 고밀도 랙 수요가 늘어날수록, 이런 인프라 솔루션을 제공하는 Vertiv의 역할도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회사의 강점은 이미 많은 데이터센터 고객을 확보하고 있고, 전원·냉각·제어 시스템을 통합해 제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서버를 새로 설계하는 고객 입장에서는 여러 회사를 따로 고르는 것보다 한 회사에서 묶어서 받는 편이 편리할 수 있습니다.
Carrier Global (티커: CARR)
Carrier는 원래 건물용 냉난방, 공조 시스템으로 잘 알려진 회사입니다. 데이터센터 냉각 분야에서도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으며, 액체 냉각 기술에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Vertiv처럼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완전히 집중된 회사는 아니고,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 중 하나로 데이터센터를 다루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이 말은 데이터센터 냉각이 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성장동력으로 키워갈 수 있는 분야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Schneider Electric (프랑스 상장, 미국 시장 비중 큼)
Schneider Electric은 에너지 관리와 자동화, 그리고 데이터센터 인프라(APC 브랜드 등)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전원 장비, 랙, 냉각, 관리 소프트웨어를 통합한 솔루션을 제공하며, 고밀도 데이터센터를 위한 액체 냉각 기술에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증시에 상장되어 있지만,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편이라 액침냉각 관련 흐름에서도 자주 언급됩니다.
비상장 액침냉각 전문 기업들
다음과 같은 기업들은 액침냉각에 매우 특화되어 있지만, 대부분 아직 비상장 상태입니다.
- Green Revolution Cooling (GRC)
- Submer
- LiquidStack
- Iceotope
이 회사들은 다양한 형태의 액침냉각 탱크와 냉매 순환 시스템, 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직접 투자하기는 어렵지만, 대형 클라우드 기업이나 서버 제조사와의 협력 소식, 실제 대규모 프로젝트 도입 사례 등은 액침냉각 시장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신호가 됩니다.
액침냉각용 냉매를 공급하는 화학·에너지 기업
액침냉각에서 냉매는 핵심 요소입니다. 과거에는 3M의 Novec 계열이 대표적인 옵션이었지만, 환경 문제로 인해 3M이 관련 제품 생산 중단을 선언하면서 판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3M (티커: MMM)
3M은 한때 액침냉각용 유전체 냉매 분야에서 선두주자 중 하나였지만, PFAS 등 환경 규제 이슈로 2025년까지 해당 제품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이 결정 이후 액침냉각 냉매 시장에서는 3M이 더 이상 핵심 플레이어로 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다만 회사 전체로 보면 여전히 다양한 산업에서 제품을 공급하는 대기업입니다.
대체 냉매를 준비하는 기업들
3M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여러 화학·에너지 기업들이 새로운 냉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회사들이 거론됩니다.
- Dow (티커: DOW)
- Honeywell (티커: HON)
- Solvay (벨기에 상장, 종목코드 SOLB.BR)
- ExxonMobil (티커: XOM)
- Shell (티커: SHEL)
이 회사들은 기존에도 냉매, 윤활유, 절연유 등 다양한 특수 유체 제품을 만들어 온 경험이 있습니다. 액침냉각 시장이 커질수록 유전체 냉매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이들 기업의 전체 매출 중에서 액침냉각 관련 비중은 아직 매우 작기 때문에, 단기간에 회사 전체 실적을 뒤흔들 만큼 큰 영향이 바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어느 회사가 성능과 환경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냉매를 내놓고,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기업들
액침냉각을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이 시장이 커지는 가장 큰 이유를 제공하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AI·HPC 칩 설계 및 제조사
다음과 같은 반도체 기업들은 고성능 칩을 만들어 액침냉각 수요를 자극하는 역할을 합니다.
- NVIDIA (티커: NVDA)
- AMD (티커: AMD)
- Intel (티커: INTC)
이 회사들이 내놓는 칩의 성능이 올라갈수록 소비 전력과 발열도 함께 늘어납니다. 그 결과 더 효율적인 냉각 기술이 필요해지고, 액침냉각 같은 새로운 방식이 도입될 여지가 커집니다. 이런 회사들은 액침냉각의 직접적인 공급자는 아니지만, 시장 전체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사
다음과 같은 기업들은 전 세계 여러 도시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Equinix (티커: EQIX)
- Digital Realty Trust (티커: DLR)
- American Tower (티커: AMT, CoreSite 인수로 데이터센터 사업 참여)
이들은 고객에게 서버 공간과 네트워크를 제공하면서, 고밀도 AI 서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액침냉각과 같은 새로운 냉각 방식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규모로 도입할지는 각 회사 전략에 따라 다르겠지만, 냉각 효율을 높이면 같은 건물 안에서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도입을 늘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액침냉각을 바라보는 시각과 앞으로의 과제
액침냉각은 단순히 유행처럼 잠깐 쓰이고 끝날 기술이라기보다는, 데이터센터 인프라의 구조를 서서히 바꾸어갈 수 있는 흐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AI와 고성능 컴퓨팅이 계속 발전하는 한,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더 효율적인 냉각 기술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기술적인 가능성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요소들도 함께 고려되고 있습니다.
- 기존 공랭식 데이터센터를 얼마나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지
- 액침냉각 장비와 냉매의 장기적인 안정성, 안전성에 대한 데이터
- 업계 표준이 어떻게 정리될지, 어떤 방식이 주류로 남을지
-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이 어느 시점에 본격적인 대규모 도입을 결정할지
이 요소들에 따라 액침냉각 시장의 성장 속도와 실제 적용 범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더 강력한 컴퓨터가 필요할수록 냉각 기술의 중요성은 계속 커진다는 점입니다. 조용하고 에너지 효율 높은 데이터센터를 만들기 위한 경쟁 속에서, 액침냉각은 앞으로도 자주 언급될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