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도크 위로 커다란 선박이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고, 멀리에서는 용접 불꽃이 별처럼 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웅장한 현장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배를 만드는 회사라면, 주가도 항상 높지 않을까?”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오랫동안 주가가 낮은 수준에서 머물렀고,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안 오르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다 보면, 주가라는 것이 단순히 기술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삼성중공업 주가가 부진했던 배경

삼성중공업은 한때 한국 조선업을 대표하는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대형 선박, LNG선, 해양 구조물 등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주가가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부터, 몇 번의 큰 실수까지 여러 요인이 겹쳐졌습니다.

1. 조선업 특유의 경기 민감성과 ‘업황 사이클’

조선업은 일반적으로 ‘경기 민감 산업’이라고 부릅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선박 주문이 확 늘어나고, 경기가 나빠지면 발주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이 과정이 몇 년 단위로 반복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진 조선사라도 경기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삼성중공업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시점에는 세계 금융위기 여파, 해운사의 불황, 해상 물동량 감소 등이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컨테이너선, 유조선, 벌크선 등 주요 선박들의 발주가 크게 줄어들면서 조선사들 전체의 일감이 말라버렸습니다. 여기에 중국 조선소들이 낮은 가격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수주에 나서면서, 한국 조선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저가 수주는 나중에 실적을 깎아먹는 부메랑이 되었습니다.

2. 해양플랜트 사업에서의 대규모 손실

삼성중공업이 겪은 가장 큰 상처 중 하나는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010년대 초반, 유가가 높게 유지되던 시기에는 해양 시추선, 드릴십, FPSO, FLNG 같은 해양플랜트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조선사 입장에서는 선박보다 단가가 훨씬 높고, 기술적으로도 도전적인 분야라 회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매력적인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설계 변경, 공정 지연, 발주처와의 조건 조정, 그리고 무엇보다 유가 급락이 겹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발주처는 계약 조건을 깎아내리려 했고, 이미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중공업은 일부 프로젝트에서 수조 원대 손실을 기록했고, 이 손실이 재무제표에 한 번에 반영되면서 회사의 재무구조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 과정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몇 년에 걸쳐 후폭풍을 남겼습니다.

3. 재무구조 악화와 반복된 유상증자

해양플랜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손실은 회사의 자본을 갉아먹었습니다. 적자가 쌓이면 자기자본이 줄어들고, 부채비율이 높아집니다. 회사가 버티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유상증자입니다. 유상증자는 새 주식을 발행해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유상증자가 잦아지면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분 비율이 줄어들고, 주당 가치가 희석된다는 점입니다. “같은 파이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눠 먹는” 상황이 되는 셈입니다. 삼성중공업은 재무구조를 지탱하기 위해 여러 차례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시장의 피로감과 불신이 커졌습니다. “또 증자하는 거 아냐?”라는 인식은 주가 회복을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이 되었습니다.

4. 낮은 수익성과 원가 부담

조선업은 수주를 많이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이익이 나는 구조가 아닙니다. 어떤 가격에 수주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경기 침체기와 중국의 저가 공세가 겹친 시기에는 수주를 따내기 위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체결된 계약은 몇 년 뒤에 배를 인도할 때까지 회사의 수익성을 짓눌렀습니다.

여기에 철판(후판) 가격 상승, 인건비 증가, 협력업체 비용 인상 등 원가 부담이 더해졌습니다. 이미 저가로 수주해 놓은 물량을 비싼 원자재와 인건비를 들여 만들어야 하니, 매출은 잡히는데 실제 이익은 별로 남지 않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겉으로는 일감이 많아 보이는데, 정작 재무제표에는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이 나타난 것입니다.

5. 시장 신뢰도 하락

주가는 결국 기대와 신뢰의 거울처럼 움직입니다. 삼성중공업은 장기간 적자, 대규모 손실, 유상증자 등 악재가 반복되면서 “믿고 오래 들고 갈 회사인가?”라는 의문을 투자자들에게 안겨주었습니다. 한 번 깨진 신뢰는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특히 조선업처럼 프로젝트 기간이 길고, 사이클도 길게 움직이는 산업에서는 회복이 더디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중공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와 새로운 기회

그렇다고 해서 삼성중공업이 예전의 어려움에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조선업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고, 이 변화가 삼성중공업에게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 규제, 에너지 시장의 변화, 기술 경쟁 구도가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1. 친환경 선박 수요 확대와 글로벌 발주 환경 개선

국제해사기구(IMO)를 비롯한 각국 규제 당국은 선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와 오염 물질을 줄이기 위해 규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기존의 노후 선박들은 점점 운항이 어려워지고, 연료 효율이 높고 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 선박으로의 교체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지금 조선업계에서 주목받는 선박들은 LNG 추진선, 메탄올 추진선, 앞으로 상용화가 기대되는 암모니아 추진선 같은 친환경 연료 기반 선박들입니다. 삼성중공업은 LNG 운반선과 LNG 추진선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술력을 쌓아 왔고, 실제로 많은 레퍼런스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선박의 연료 절감 기술, 선형 설계, 화물창 설계 등에서 강점을 가진 회사이기 때문에, 환경 규제가 강화될수록 기술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는 구조입니다.

또한 에너지 안보 이슈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특정 지역의 분쟁이나 공급 불안이 커질수록, 여러 나라에서는 LNG 같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운반선 수요를 늘리게 됩니다. 이 역시 LNG선에 강점이 있는 삼성중공업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2. 해양플랜트의 재도약 가능성

한때 삼성중공업을 괴롭혔던 해양플랜트 사업은 동시에 잠재적인 기회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손실 경험을 통해 리스크 관리와 계약 구조, 설계·공정 통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체험한 만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관건입니다.

최근에는 해저 가스전을 개발해 액화천연가스를 생산·가공하는 FLNG(부유식 LNG 생산 설비) 같은 고부가가치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에너지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흐름이 맞물리면서 해양 가스전 개발이 하나의 타협점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삼성중공업은 과거 FLNG 프로젝트 경험을 갖고 있어, 발주가 본격화될 경우 다시 한 번 역량을 보여줄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3. 수익성 중심 전략과 선가 상승 효과

과거와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무조건 물량을 채우는 것”에서 “수익성이 나는 물량만 선택적으로 수주하는 것”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선업 전체가 불황을 겪으며 조선소들의 건조 능력이 줄어든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친환경 선박 수요와 LNG선 수요가 늘어나자 신조선가(새로 짓는 배의 가격)가 상승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박 가격이 오르면, 같은 배를 지어도 예전보다 높은 마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삼성중공업은 LNG선, 컨테이너선, 해양 관련 특수 선박 등 비교적 단가가 높은 선박 위주로 수주 비중을 높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저가 수주가 서서히 마무리되고, 최근에 높은 가격으로 수주한 물량이 본격적으로 매출과 이익으로 반영되기 시작하면, 재무제표 상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회사는 구조조정과 생산 효율화 작업을 통해 고정비를 줄이려 노력해왔습니다. 도크와 설비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공정을 관리하는 등 “같은 인력과 설비로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4. 재무구조의 점진적 안정과 신뢰 회복 시도

손실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어느 정도 이익이 쌓이기 시작하면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현금흐름이 개선되는 효과가 따라옵니다. 이렇게 되면 과거처럼 대규모 유상증자를 할 필요성이 줄어듭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제는 자본시장에서 계속 돈을 끌어다 쓰지 않아도 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구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재무구조가 건강해질수록, 회사는 미래를 위한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에 좀 더 안정적으로 자금을 쓸 수 있습니다. 친환경 연료 시스템, 자율운항 기술, 디지털 트윈(가상 선박 시뮬레이션) 등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여력도 늘어납니다. 이런 장기적인 기술 경쟁력이 쌓이면, 다시 한 번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남아 있는 위험 요인들

긍정적인 변화가 보인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조선업은 구조적으로 변동성이 큰 산업이고, 삼성중공업 역시 여러 외부 변수의 영향을 계속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1. 세계 경기와 해상 물동량의 불확실성

세계 경제가 둔화되면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무역량이 줄어듭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해상 물동량도 감소하고, 선박 주문이 줄어듭니다. 특히 컨테이너선, 벌크선, 유조선은 글로벌 경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선사는 지금 받는 주문으로 2~3년 뒤의 매출을 만들기 때문에, 경기가 꺾이면 그 여파가 몇 년 뒤 실적에 반영되는 구조입니다.

2. 원자재 가격과 환율 변동

조선소가 배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쓰는 재료 중 하나가 철판입니다. 이 후판 가격이 오르면 건조 원가가 크게 뛰어오릅니다. 이미 정해진 가격으로 수주해 놓은 선박의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환율 역시 중요합니다. 선박 대금은 주로 달러로 받지만, 인건비와 많은 원가는 원화로 나가기 때문에 환율 흐름에 따라 손익이 달라집니다.

3. 중국 조선소와의 경쟁 심화

과거에는 중국 조선소가 주로 저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고부가가치 선박, 특히 LNG선 등에서도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움직임이 뚜렷합니다. 국가적인 지원까지 더해져 가격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한국 조선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중공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 가격 경쟁이 아니라, 기술력과 신뢰도, 복잡한 프로젝트 수행 능력 같은 차별화 요소를 더 강화해야 합니다.

4. 인력 부족과 기술 전승 문제

조선업은 자동화가 많이 진행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숙련된 인력이 중요합니다. 용접, 도장, 배관, 설계 등에서 경험 많은 인력이 줄어들고, 신규 인력 유입이 원활하지 않으면 일정 지연과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조선업을 기피하는 현상, 지역 문제, 근무 환경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기술이 세대 간에 자연스럽게 전해지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삼성중공업을 바라보는 시각 정리

삼성중공업의 지난 10여 년은 분명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해양플랜트에서의 대규모 손실, 반복된 유상증자, 장기간 이어진 적자와 낮은 수익성은 주가를 짓누르는 요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적인 환경 규제 강화와 친환경 선박 수요 확대, LNG선 및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의 성장, 해양 가스전 및 FLNG 수요 재개 가능성은 삼성중공업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저가로 수주한 물량들이 서서히 마무리되고, 최근의 높은 선가로 수주된 물량이 이익으로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선업 특유의 ‘시간 차’ 때문에, 지금 당장의 숫자만 보고 판단하면 전체 흐름을 놓치기 쉽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삼성중공업이 한때 발목을 잡았던 구조적인 문제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시장 환경도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회사의 미래를 어떻게 볼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적어도 과거의 어려움과 현재의 변화, 앞으로의 기회와 위험을 함께 놓고 차분히 바라본다면, 숫자 뒤에 숨은 이야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