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에 설치된 거대한 풍력 터빈을 처음 가까이에서 봤을 때, 돌아가는 블레이드 소리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주변이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수평선 위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터빈들을 보고 있으면, ‘전기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현실감이 서서히 밀려옵니다. 그날 이후로 해상풍력발전이 어떻게 돌아가고, 여기에 어떤 기업들이 얽혀 있는지 하나씩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해상풍력발전의 기본 원리
해상풍력발전소의 기본 원리는 육상풍력과 동일하지만, 바다라는 환경에 맞는 설계와 기술이 필요합니다. 바람의 운동 에너지를 회전 에너지로 바꾸고, 다시 전기 에너지로 변환해 육지까지 보내는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바람이 불면 터빈의 블레이드가 회전합니다. 이 회전력이 로터와 샤프트를 통해 나셀 내부의 발전기로 전달되고, 발전기에서 전기가 생산됩니다. 생산된 전기는 해저 케이블을 통해 해상 변전소로 모인 뒤, 전압을 높여 육상 변전소로 보내지고, 다시 적절한 전압으로 변환되어 전력 계통에 편입됩니다.
바다에서 발전하면 달라지는 점
해상풍력은 같은 원리로 전기를 만들지만, 바다라는 입지 덕분에 몇 가지 뚜렷한 장점이 있습니다.
바다는 지형적 장애물이 적어 바람이 더 강하고 일정하게 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발전량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대형 터빈을 설치하기에도 유리합니다. 또 주거지와 거리가 떨어져 있어 소음과 경관 문제에 대한 갈등이 육상보다 적은 편입니다.
부지 확보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육상에서는 대규모 풍력단지를 조성하려면 산지 훼손, 토지 보상 문제 등 갈등 요소가 많은데, 해상은 일정 수심과 환경 조건만 맞으면 넓은 단지를 한 번에 계획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물론 해양 생태계와 어업권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논의 대상입니다.
해상풍력발전소의 핵심 구성 요소
직접 현장을 보고 나면, 눈에 보이는 터빈 외에도 뒤에서 수많은 설비가 함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해상풍력발전소를 크게 나누면 풍력 터빈, 하부 구조물, 해저 케이블, 변전설비로 구성됩니다.
풍력 터빈 구조
풍력 터빈은 우리가 흔히 사진으로 보는 ‘날개 달린 구조물’ 전체를 의미합니다. 주요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블레이드(Blade): 바람의 운동 에너지를 회전 에너지로 바꾸는 날개 역할을 합니다. 해상풍력은 대형 터빈이 많아 블레이드 길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기도 합니다.
- 나셀(Nacelle): 블레이드와 타워 사이에 위치한 상자형 구조물로, 발전기, 기어박스(터빈 종류에 따라 생략되기도 함), 제어 장치 등이 들어 있습니다.
- 타워(Tower): 터빈 전체를 지지하는 기둥으로, 일정 높이에서 더 강하고 안정적인 바람을 받도록 설계됩니다.
하부 구조물과 설치 방식
해상풍력의 가장 큰 기술적 차별점은 하부 구조물입니다. 바다 깊이와 해저 지질에 따라 적합한 방식이 달라집니다.
고정식 하부 구조물
수심이 비교적 얕은 해역에서는 해저면에 직접 고정하는 고정식 방식이 주로 사용됩니다.
- 모노파일(Monopile): 단일 강철 기둥을 해저에 깊게 박는 방식입니다. 시공이 비교적 단순해 수심 30m 안팎의 해역에서 널리 사용됩니다.
- 자켓(Jacket): 여러 개의 강관을 격자 형태로 연결한 구조물로, 수심이 더 깊은 곳에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 중력식(Gravity-based): 무거운 콘크리트 구조물 자체의 무게로 해저면에 고정하는 방식입니다. 해저 지반 조건에 따라 경제성이 갈립니다.
부유식 하부 구조물
수심이 깊은 바다에서는 고정식보다 부유식 해상풍력이 유리해집니다. 아직 상용화 규모는 제한적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 스파(Spar): 길고 가는 원통형 구조물이 물속 깊이 잠겨 있어, 낮은 무게중심으로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 세미 서브머시블(Semi-submersible): 여러 개의 부력체를 연결한 구조물로, 파도와 바람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설치와 이동이 비교적 유연합니다.
- 텐션 레그 플랫폼(Tension Leg Platform, TLP): 부유체를 해저에 설치된 앵커와 강선으로 수직에 가깝게 고정해 상하 움직임을 크게 줄이는 방식입니다. 수심이 깊은 해역에서 높은 발전 효율을 기대할 수 있어 미래 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해저 케이블과 변전 설비
생산된 전기를 육지까지 안전하게 보내는 과정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해저 케이블과 변전소가 핵심 역할을 합니다.
- 해저 케이블(Subsea Cable): 개별 터빈과 해상 변전소를 연결하고, 해상 변전소에서 육상 변전소까지 전력을 송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해저 환경에 맞는 높은 내구성과 절연 성능이 필수입니다.
- 해상 변전소: 여러 터빈에서 생산된 전력을 모아 전압을 높인 뒤, 손실을 줄여 육지까지 송전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육상 변전소: 해상에서 들어온 전력을 다시 적절한 전압으로 조정해 기존 전력 계통에 연계합니다.
국내 해상풍력 시장 환경
국내에서는 에너지 전환 정책과 2050 탄소중립 목표가 해상풍력 확대의 가장 큰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한 여러 계획을 내놓았고, 해상풍력은 그 중에서도 대규모 공급이 가능한 수단으로 꼽힙니다.
다만 실제 사업을 진행해 보면 인허가 과정이 길고 복잡하며, 어업권과 환경 영향에 대한 협의가 필수적입니다. 초기 투자비가 크다는 점도 부담 요소입니다. 이 때문에 계획 발표와 실제 착공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성장 요인과 과제
국내 해상풍력 시장의 성장 요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과 탄소중립 목표
- 해상풍력 대형화, 부유식 기술 발전 등 기술 진보
- 조선, 중공업, 철강 등 기존 산업과의 연계 가능성
반대로, 다음과 같은 과제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사업 기간 장기화
- 어업인, 지역 주민과의 수용성 문제
- 해양 환경 영향 평가 및 생태계 보전
- 높은 초기 투자비와 금융 조달 구조 설계
국내 해상풍력 관련 기업 분류
주식 시장에서 해상풍력 관련 기업을 볼 때는, 단순히 ‘재생에너지’로 묶기보다 어느 단계에 참여하는지 나누어 보는 편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일반적으로는 하부 구조물·타워, 터빈, 해저 케이블, 건설·EPC, 개발·운영(디벨로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부 구조물·타워·강재 관련 기업
해상풍력에서 구조물과 철강은 가장 기초적인 부분입니다. 국내에는 다음과 같은 기업들이 주로 거론됩니다.
- SK오션플랜트: 해상풍력 하부 구조물(재킷, 모노파일) 분야에서 국내 대표적인 기업으로, 해외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며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부유식 하부 구조물 관련 기술 개발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 CS WIND: 풍력 타워 제조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해상풍력용 타워 시장에서도 입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 포스코스틸리온, 동국제강 등: 해상풍력 구조물 제작에 필요한 후판과 강재를 공급하며, 원자재 측면에서 간접적으로 산업 성장의 영향을 받습니다.
터빈 제조 관련 기업
터빈은 해상풍력의 ‘심장부’라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다음 기업이 대표적으로 언급됩니다.
- 두산에너빌리티: 국내에서 대형 해상풍력 터빈을 개발·공급할 수 있는 주요 업체 중 하나로, 8MW급 해상풍력 터빈을 개발해 실증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국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실적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유럽 업체들이 여전히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도 점차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해저 케이블 관련 기업
직접 바다 위에 설비를 짓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 해저 케이블입니다. 높은 기술 장벽 때문에 소수 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 LS전선: 국내에서 해저 케이블 분야의 핵심 기업으로 꼽히며, 해상풍력 단지와 연계된 해저 전력 케이블 공급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사업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건설·EPC(설계·조달·시공) 관련 기업
해상풍력 단지는 단순한 구조물 조립이 아니라, 해양 시추, 항만 공사, 전력 인프라 공사를 모두 아우르는 종합 프로젝트에 가깝습니다. 이 때문에 대형 건설사와 중공업 기업들이 EPC 영역에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삼성물산 등: 해상 구조물 설치와 대규모 인프라 공사 경험을 바탕으로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세아제강지주 등: 해상풍력용 강관 및 부유체 관련 제품 공급을 통해 간접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개발·운영(디벨로퍼) 관련 기업
실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인허가를 진행하며, 금융을 조달하고, 완공 후 장기간 운영하는 역할은 디벨로퍼가 맡습니다. 국내에서는 에너지 기업과 대기업 계열사가 이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SK E&S, 한화솔루션, 한국전력공사 등: 국내외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개발 단계에서 지분을 확보해 장기 운영 수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초기 투자와 긴 사업 기간을 감당할 수 있는 재무 여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해상풍력 관련주를 볼 때 체크할 부분
향후 해상풍력 관련 기업을 살펴볼 때는 단순 기대감만 보기보다, 몇 가지 현실적인 요소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정부 정책의 방향과 지속성: 지원 제도, 인허가 개선, 전력 시장 제도 변화 등은 사업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 기술 경쟁력과 레퍼런스: 부유식 해상풍력이나 대형 터빈 등 핵심 기술 보유 여부, 실제 상업 운전 실적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합니다.
- 수주 및 프로젝트 진행 단계: 발표된 계획이 실제로 착공·상업 운전까지 이어지는지, 계약 규모와 일정이 구체적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 글로벌 시장 참여 여부: 국내 시장만으로는 규모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해외 프로젝트 수주나 글로벌 파트너십 여부도 장기 성장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글은 정보 제공을 위한 일반적인 설명일 뿐이며, 특정 기업의 매수·매도를 권유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실제 투자 여부는 각자의 판단과 책임 아래 신중히 검토하시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