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전, 냉동실을 정리하다가 오래전에 사두고 잊어버린 맵쌀가루 한 봉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찜기는 없고 전기밥솥만 덩그러니 있는 상황이라 잠깐 망설였지만, 그냥 밥만 하기에엔 아쉬워 백설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실패하면 떡 부스러기라도 우유에 말아 먹지 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의외로 전기밥솥만으로도 꽤 그럴듯한 백설기가 나와서 그 이후로 종종 같은 방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전기밥솥으로 백설기 만들 때 꼭 기억할 점

전기밥솥으로 찌는 백설기는 찜기에서 찌는 것과 원리는 같지만, 수분과 시간 조절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래 내용만 기억하면 처음 만드는 분들도 실패할 확률이 많이 줄어듭니다.

  • 쌀가루 수분은 “쥐었을 때 뭉치고, 흔들어도 그대로 유지되는 정도”로 맞춘다.
  • 체는 한 번만 쳐도 만들 수 있으나, 두 번 내리면 훨씬 부드러워진다.
  • 설탕은 수분 조절과 체 치기가 끝난 뒤, 마지막에 섞는다.
  • 찜이 끝난 뒤 5~10분 정도 뜸을 들이면 떡이 덜 꺼지고 식감이 좋아진다.
  • 쌀가루를 용기에 담을 때는 꾹꾹 누르지 말고 가볍게 담는다.

재료와 도구 준비

재료와 도구는 집에 있는 것들 위주로 맞추면 충분합니다. 다만 체와 면보(또는 유산지)는 가능하면 준비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재료

  • 맵쌀가루 500g (방앗간 쌀가루 또는 시판용 쌀가루)
  • 설탕 50~70g (단맛은 기호에 맞게 조절)
  • 소금 5g (약 1작은술)
  • 물 50~80ml (쌀가루 상태에 따라 조절)
  • 선택 재료 (있으면 사용)
    • 대추채, 밤, 호박씨, 완두콩 등 고명
    • 색을 내고 싶을 때: 단호박가루, 쑥가루, 딸기가루 등 소량

시판용 쌀가루는 대체로 건조해서 물을 조금 더 넣어야 하고, 방앗간에서 바로 빻은 쌀가루는 이미 수분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물을 적게 넣어도 됩니다. 50ml 정도 넣고 시작해서, 손으로 만져가며 조금씩 추가하는 방식이 안전합니다.

도구

  • 찜 기능이 있는 전기밥솥
  • 내솥에 들어가는 내열 찜 용기 (스텐, 유리, 실리콘 등)
  • 큰 볼
  • 고운 체
  • 주걱 또는 스크래퍼
  • 면보, 유산지, 종이 호일 등 (찜 용기 바닥에 깔 것)

쌀가루에 수분 맞추기

백설기에서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바로 이 단계입니다. 이 과정만 제대로 지나가면 절반은 성공입니다.

  • 큰 볼에 맵쌀가루 500g과 소금 5g을 넣고 골고루 섞습니다.
  • 물 50ml를 먼저 넣고 손가락을 세운 상태로 살살 비벼가며 섞습니다.
  • 여전히 너무 가루 같고 푸석하면, 한 번에 많이 붓지 말고 5~10ml씩 추가합니다.
  • 쌀가루를 한 줌 쥐었을 때 단단하게 뭉치고, 가볍게 흔들어도 그대로 유지되면 수분이 적당합니다.
  • 쥐었을 때 바로 부서지면 물이 부족한 것이고, 손에 달라붙을 정도로 질척하면 물을 많이 넣은 상태입니다.

방앗간 쌀가루는 보통 50~60ml 사이에서 맞는 경우가 많고, 시판 건조 쌀가루는 70~80ml 정도까지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확한 양보다는 손으로 쥐었을 때의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쌀가루 체 치기와 설탕 섞기

쌀가루를 바로 찌는 것과, 한 번이라도 체에 내려서 찌는 것은 식감에서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두 번 내리면 더 곱고 포슬포슬한 식감이 살아납니다.

  • 수분 조절이 끝난 쌀가루를 고운 체에 한 번 내려 덩어리를 잘 풀어줍니다.
  •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한 번 더 내려줍니다. 이때 손바닥으로 살살 문지르며 체를 통과시키면 좋습니다.
  • 체에 내린 쌀가루에 설탕 50~70g을 넣고 주걱으로 가볍게 섞습니다.
  • 색 가루(단호박가루, 쑥가루 등)를 사용할 경우, 이 단계에서 설탕과 함께 섞습니다.

설탕을 처음부터 넣고 물을 섞으면 설탕이 녹으면서 쌀가루가 군데군데 질척거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분 조절과 체 치기가 끝난 뒤, 가장 마지막에 섞는 편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전기밥솥과 찜 용기 준비

집마다 전기밥솥 종류가 달라 찜 기능 이름이나 버튼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인 준비 과정은 거의 같습니다.

  • 전기밥솥 내솥에 스팀 트레이나 삼발이를 넣습니다.
  • 내솥에 물을 약 2~3cm 정도 붓습니다. 찜 시간이 20~30분이므로, 중간에 마르지 않을 정도의 양이면 충분합니다.
  • 백설기를 찔 찜 용기 안쪽에 유산지, 종이 호일, 또는 면보를 바닥과 옆면까지 깔아줍니다.
  • 실리콘 찜틀을 사용할 경우에는 바닥에만 살짝 기름을 발라주거나, 그대로 사용해도 잘 떨어지는 편입니다.

쌀가루 담기와 칼집 내기

이 단계에서 힘을 너무 주면 떡이 단단해지고, 나중에 먹을 때 퍽퍽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찜 용기에 준비된 쌀가루를 고루 뿌리듯이 담습니다.
  • 숟가락 뒷면이나 주걱으로 살살 톡톡 쳐서 표면만 정리해 줍니다.
  • 절대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지 않습니다. 살짝 정리하는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 고명을 사용할 경우, 표면 위에 골고루 올려 살짝만 눌러 고정합니다.
  • 칼이나 스크래퍼로 윗면에 십자 또는 격자 모양으로 얕게 칼집을 냅니다.

칼집을 내면 증기가 골고루 잘 들어가 떡이 더 고르게 익고, 나중에 자를 때도 칼집 라인을 따라 정리하기 좋아집니다.

전기밥솥으로 찌기와 뜸 들이기

백설기를 처음 만들 때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어렵다면, 약간 부족한 듯하면 더 찌는 쪽이 낫습니다. 너무 짧으면 속이 설익고, 너무 길면 겉이 건조해집니다.

  • 찜 용기를 내솥 안의 스팀 트레이 위에 조심스럽게 올립니다.
  • 전기밥솥 뚜껑을 닫고 찜 기능으로 25분 정도 설정합니다. (500g 기준)
  • 밥솥 화력이 약하거나 떡 두께가 두꺼운 경우에는 5분 정도 더 추가해줍니다.
  • 찜 완료 후에는 바로 뚜껑을 열지 말고, 전원을 끈 상태에서 5~10분 정도 그대로 두어 뜸을 들입니다.

이 뜸 들이는 과정에서 떡 속까지 열이 천천히 퍼지면서 식감이 차분하게 정리됩니다. 바로 꺼내면 윗면이 주저앉거나 수분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질감이 고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백설기 꺼내기와 잘라 먹기

막 쪄낸 떡은 뜨거워 보이지만, 성급하게 자르면 단면이 지저분하게 부서져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 뜸이 충분히 들고 나면, 찜 용기를 꺼내 잠시 식혀줍니다.
  • 겉이 살짝 식어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바닥에 깔아둔 유산지나 면보를 잡고 떡을 통째로 들어 냅니다.
  • 완전히 식히기 전에, 미지근한 상태에서 칼집 낸 부분을 기준으로 잘라줍니다.
  • 칼은 한 번씩 닦아가며 자르면 단면이 더 깔끔합니다.

집에서 만든 백설기는 방앗간 떡집처럼 완벽하게 반듯하지 않아도, 오히려 투박한 모양 그대로가 집 떡의 매력이라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보관과 재가열 방법

한 번에 다 먹기 어렵다면, 깔끔하게 나눠서 보관해 두었다가 그때그때 꺼내 먹는 것이 좋습니다.

  • 완전히 식힌 뒤, 한 조각씩 랩이나 비닐에 포장합니다.
  •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 보관합니다.
  • 먹을 때는 실온에서 살짝 해동한 뒤, 전자레인지에 짧게 돌리거나 전기밥솥 찜 기능으로 5분 정도만 데워줍니다.
  • 다시 찔 때에는 마른 느낌이 난다면, 떡 겉면에 살짝 물을 묻혀 찌면 한결 촉촉해집니다.

단호박가루나 쑥가루 등을 넣어 만든 백설기도 같은 방법으로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가루 자체에 수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처음 반죽할 때 물의 양을 아주 약간 줄이거나, 색 가루를 소량의 물에 풀어 쌀가루에 섞으면 더 고르게 섞이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