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IRP 계좌를 처음 만들었을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창구에서 설명을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집에 돌아와 서류를 다시 보니 용어도 낯설고 세금 이야기도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55세가 지나면 연금으로 받으셔야 유리합니다”라는 말만 어렴풋이 남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다시 공부해 보니, 생각보다 단순한 원리 위에 제도가 얹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노후 준비에 대한 불안도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IRP는 ‘개인형퇴직연금’이라는 이름 그대로, 퇴직금과 노후 자금을 한 계좌에 모아서 관리하도록 만든 제도입니다. 특히 세금 혜택이 크기 때문에, 어떻게 넣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꺼내느냐에 따라 손에 남는 금액이 크게 달라집니다. 아래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복잡해 보이던 IRP의 구조와 세금이 한눈에 정리될 것입니다.
IRP로 연금을 받기 위한 기본 요건
IRP는 원래 “노후용 돈”을 모으는 계좌입니다. 그래서 아무 때나 마음대로 꺼내 쓰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연금처럼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나이가 만 55세 이상이어야 합니다.
둘째, IRP에 가입한 날로부터 5년 이상이 지나야 합니다.
이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비로소 “연금 수령”으로 인정되고, 이때부터 각종 세금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돈을 빼면, 이름 그대로 “중도 인출” 또는 “중도 해지”가 되어 불이익이 생깁니다.
IRP에서 돈을 꺼내는 두 가지 방법
IRP 계좌에 쌓인 돈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한 번에 다 찾는 방법과, 나누어 받는 방법입니다.
연금으로 나누어 받는 방법
연금 수령 요건(만 55세 이상, 가입 5년 이상)을 채웠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이 방법은 IRP의 원래 목적에 가장 잘 맞는 수령 방식입니다.
연금 수령이란, IRP 안에 있는 돈을 한 번에 빼지 않고, 일정 기간에 걸쳐 쪼개서 받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최소 10년 이상으로 기간을 정해 두고, 매달 또는 매 분기, 매년 등으로 나누어 받도록 설정합니다. 금융기관과 상의해서 기간과 수령 주기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연금소득세라는 낮은 세율이 적용되어, 일시금으로 받을 때보다 세금 부담이 훨씬 줄어듭니다.
- 퇴직금을 IRP로 옮겨 놓았다면, 퇴직소득세를 30%까지 감면받는 혜택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노후에 정기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어 생활비 계획을 세우기 수월합니다.
특히 “세금을 덜 내고, 오래 나누어 받는다”는 점에서, IRP를 활용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시금으로 한 번에 찾는 방법
연금 수령 요건을 채운 뒤에도, 원한다면 IRP 계좌의 돈을 한 번에 다 찾아갈 수 있습니다. 또는 55세 이전이거나, 가입한 지 5년이 안 되어서 연금 수령 요건을 만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좌를 해지하는 경우에도, 결과적으로는 일시금 수령과 비슷한 형태가 됩니다.
일시금 수령은 말 그대로 IRP에 쌓인 자산을 모두 인출하는 방식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번에 받으니 시원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세금 측면에서는 손해가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연금으로 받을 때보다 훨씬 높은 세율(기타소득세)이 적용됩니다.
- 퇴직금을 IRP로 옮긴 경우라도, 연금으로 받지 않으면 퇴직소득세 30% 감면 혜택이 사라집니다.
특히 연금 수령 요건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중도 해지하면, 그동안 받았던 세액공제 혜택을 다시 반납해야 하는 상황까지 생겨 실제 손해가 크게 커질 수 있습니다.
IRP 안에 들어 있는 돈의 구성 이해하기
IRP 계좌 속 돈은 크게 두 종류에서 옵니다.
- 본인이 납입하면서 세액공제를 받았던 금액과, 그 돈을 굴려서 생긴 운용수익
- 직장에서 퇴직할 때 받은 퇴직금을 IRP로 옮겨 놓은 금액
이 둘은 돈이 섞여 있지만, 세금 계산을 할 때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나누어 계산합니다. 그래서 IRP에서 돈을 뺄 때는 “내가 받는 돈 중에 어느 부분이 세액공제 받은 납입금과 수익인지, 어느 부분이 퇴직금인지”를 구분해서 보게 됩니다.
연금으로 받을 때 세금은 어떻게 될까
연금 수령 요건을 충족한 상태에서, IRP의 돈을 연금으로 받을 때 세금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액공제를 받았던 납입금과 운용수익에 대한 세금
개인이 IRP에 납입하면서 세액공제를 받았던 원금과, 그 돈을 운용해서 얻은 수익에는 연금소득세가 붙습니다. 이때 세율은 나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 만 70세 미만: 5.5%
- 만 70세 이상 ~ 80세 미만: 4.4%
- 만 80세 이상: 3.3%
위 세율은 지방소득세까지 포함한 실제 부담률입니다. 중요한 점은, 세액공제를 받은 부분과 그 수익에만 세금이 붙는다는 점입니다. 만약 세액공제를 받지 않고 넣어 둔 납입금이 있다면, 그 원금 부분은 연금 수령 시 비과세가 될 수 있습니다.
퇴직금을 IRP로 옮긴 경우의 세금
직장에서 퇴직할 때 바로 퇴직금을 받으면, 그 순간 퇴직소득세를 계산해서 한 번에 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퇴직금을 IRP로 옮기면, 세금을 나중으로 미루는 동시에, 연금으로 수령할 경우 퇴직소득세의 30%를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원래 내야 할 퇴직소득세를 먼저 계산한 뒤, 그 금액의 30%를 깎아 준 다음, 연금을 받을 때마다 나누어 내는 방식으로 처리됩니다. 이 구조 덕분에 퇴직금을 IRP로 이전해 두면 세금 측면에서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일시금으로 받을 때 세금이 커지는 이유
연금 수령 요건을 충족한 뒤에도 IRP를 일시금으로 해지해서 전액 인출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세금 계산 방식이 크게 달라집니다.
세액공제를 받았던 납입금과 운용수익에 대한 세금
이 경우에는 연금소득세 대신 “기타소득세”가 적용됩니다. 세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타소득세 15% + 지방소득세 1.5% = 총 16.5%
이 세율은 연금으로 받을 때의 3.3%~5.5%보다 훨씬 높습니다. 과세 대상 역시 세액공제를 받았던 납입금과 그 수익 전체입니다. 즉, “세액공제를 받았던 돈을 어떻게 꺼내느냐에 따라 세율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퇴직금에 대한 세금
퇴직금을 IRP로 옮겨 두었다가 연금이 아닌 일시금으로 꺼내면, 원래의 퇴직소득세 감면 혜택이 사라집니다. 결국, 퇴직소득세를 30% 깎아 주지 않고 원래 계산대로 모두 내야 합니다.
연금으로 받을 때는 감면 혜택을 유지하면서 세금을 나누어 내지만, 일시금으로 받으면 “감면 없음 + 일시 납부”가 되어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연금 수령 요건을 못 채우고 중도 해지할 때
만 55세가 되기 전이거나, 가입한 지 5년이 안 되었는데 IRP를 해지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는 단순히 “일시금 수령”보다 더 큰 불이익이 생깁니다.
세액공제를 받았던 납입금과 운용수익에 대해서는 일시금 수령과 마찬가지로 기타소득세 16.5%가 부과됩니다. 여기에 더해, 그동안 IRP에 납입하면서 매년 받았던 세액공제 혜택을 다시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세액공제 추징이라고 부릅니다.
즉, 과거에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세 신고를 통해 돌려받았던 세금을 다시 토해내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단순히 “세금을 조금 더 내는 정도”가 아니라 누적된 혜택을 한꺼번에 잃는 셈입니다.
퇴직금 부분도 마찬가지로, 퇴직소득세 30% 감면 없이 원래 계산대로 전액을 납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사유가 아니라면, IRP를 중간에 해지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중도 인출이 가능한 예외 상황
현실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어떻게든 IRP에서 돈을 꺼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법에서 정한 “예외 사유”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세액공제 추징 같은 일부 불이익이 면제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외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가입자 본인이나 부양가족이 사망한 경우, 또는 해외로 이주하는 경우
- 지진, 홍수, 태풍 등 천재지변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경우
- 가입자나 부양가족이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질병이나 부상을 입고, 그 의료비가 연간 급여 총액의 12.5%를 넘는 경우
-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할 때
-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마련할 때
- 개인회생이나 파산 선고를 받은 경우
- IRP를 취급하던 금융기관이 파산한 경우
이런 사유에 해당한다고 해서 모든 세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액공제 추징 같은 불이익이 면제되는 등, 부담을 줄여주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각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규정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므로, 실제로 중도 인출을 고려할 때는 반드시 금융기관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IRP를 활용할 때 기억하면 좋은 핵심 포인트
IRP의 구조와 세금 규정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면, 실제로 활용할 때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 가능하면 연금 수령 조건을 채운 뒤, 연금 형태로 장기간 나누어 받는 것이 세금과 노후 자금 관리 측면에서 가장 유리합니다.
- 퇴직금을 받을 때 바로 현금으로 수령하기보다는, IRP로 이전해 두면 퇴직소득세 30% 감면과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 IRP는 원래 장기 운용을 전제로 한 계좌이므로, 단기간 안에 꺼내 쓸 가능성이 있는 자금은 되도록 넣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 연금저축과 IRP는 각각 세액공제 한도가 따로 있기 때문에, 두 계좌를 함께 활용하면 절세 효과를 더 키울 수 있습니다.
- 다만 나중에 연금을 받을 때는, 연금저축과 IRP에서 나오는 연금 수령액을 합한 금액이 1년에 1,500만 원을 넘으면 종합과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을 고려해 수령 시기와 금액을 조절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 세법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뀔 수 있고, 개인의 상황(소득, 자산 규모, 가족 구성 등)에 따라 유리한 선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IRP를 맡긴 은행이나 증권사에 상담을 요청하면, 보다 구체적인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IRP는 처음 접하면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오래 묶어 두고, 조건을 채운 뒤 연금으로 천천히 빼 쓰면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계좌”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기본 원리를 떠올리면서, 자신의 은퇴 시점과 생활 계획에 맞추어 IRP를 어떻게 활용할지 차근차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