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노래방에 갔을 때, 화면이 켜지고도 아무도 첫 곡을 잘 안 고르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어색한 침묵이 몇 초 계속되다가, 누군가 용기를 내서 트로트 한 곡을 넣자마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사를 완벽히 알지는 못했지만, 후렴만 나오면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고 박수도 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잘 고른 트로트 메들리 한 번이면, 조용하던 자리가 순식간에 작은 무대처럼 바뀐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여기서는 노래방에서 쓰기 좋은 트로트 메들리 구성법과 곡들을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존에 많이 부르는 곡들을 중심으로 하되, 실제로 불러봤을 때의 느낌과 분위기를 고려해서 순서를 새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시작은 가볍고 뜨겁게, 모두가 아는 곡부터

노래방에서 첫 곡은 부담스럽지 않고, 전주만 들어도 사람들이 “아 이 노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곡이 좋습니다. 박수 치기 쉽고, 따라 부르기 편한 노래가 특히 좋습니다.

트로트 메들리를 열 때 가장 많이 선택되는 곡 중 하나가 박상철의 ‘무조건’입니다. 이 곡은 전주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박수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곡입니다. “무조건~ 무조건이야~” 하는 후렴은 가사를 다 모르더라도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어서, 노래 실력과 상관없이 모두가 목소리를 보탤 수 있습니다. 메들리의 첫 버튼을 누를 때 넣으면 부담 없이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좋습니다.

이후에는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를 이어붙이면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곡은 전통적인 트로트 느낌에 전자음이 섞여 있어서, 연령대가 섞여 있어도 대부분 좋아합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같은 구절은 이미 여러 곳에서 많이 들었던 멜로디라서 금방 입에 붙습니다. 박수와 가벼운 춤이 어울려, 초반에 긴장을 풀어주기 좋습니다.

조금 더 텐션을 유지하면서도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면 송대관의 ‘네 박자’를 이어가는 것도 좋습니다. 이 곡은 “하나 둘 셋 넷”이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나와서, 굳이 마이크를 들지 않은 사람도 숫자를 세며 참여하기 쉽습니다. 리듬 자체가 단순해서 박수만 쳐도 흥이 살아나고, 노래를 잘 몰라도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을 수 있습니다.

몸을 풀었으면, 본격적으로 흥을 끌어올리는 구간

초반에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렸다면, 이제는 앉아 있기보다 몸을 살짝 움직이고 싶어지는 곡들을 넣을 차례입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가사가 어렵지 않고 짧은 구절이 자주 반복되는 노래를 고르는 것입니다.

장윤정의 ‘어머나’는 이 구간에 잘 어울리는 곡입니다. 이 곡은 발표 당시 큰 인기를 끌면서 트로트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후렴의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부분은 리듬도 간단하고 따라 부르기 좋아서, 메들리 중간에서 전체 분위기를 한 번 더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손동작을 곁들여 장난스럽게 부르면, 보는 사람들도 웃게 됩니다.

다음으로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는 밝고 경쾌한 멜로디 덕분에 특히 젊은 층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당신은 나의 배터리”라는 표현 덕분에 노래가 전체적으로 귀여운 느낌을 주는데, 부르는 사람의 표정과 제스처에 따라 분위기가 더 살아납니다. 높은 음이 길게 이어지는 부분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메들리로 부를 때는 포인트 되는 구절 위주로만 불러도 충분히 재미를 살릴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고전적인 맛을 살리고 싶다면 설운도의 ‘사랑의 트위스트’를 추천합니다. 이 곡은 말 그대로 트위스트 춤을 추기 딱 좋은 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리를 가볍게 흔들면서 천천히 반주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일어나서 함께 움직이고 싶어집니다. 트로트 특유의 정겨운 맛과 함께 신나는 춤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남진의 ‘둥지’를 넣으면 한층 더 화기애애한 장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곡은 명절이나 가족 모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노래이기도 해서, 세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부르기 좋습니다. 후렴에서 “이젠 내가~ 당신의 둥지가 되어~” 하는 부분은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부르기 좋아, 메들리 한가운데에 넣어두면 전체 흥을 튼튼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열기가 충분히 올랐다면, 잠시 숨 고르기

모든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부르지 않고, 하이라이트 위주로 빠르게 이어가다 보면 생각보다 체력이 빨리 소모됩니다. 그래서 메들리 한가운데에, 감정을 살짝 가라앉히면서도 집중해서 듣게 만드는 곡을 한두 곡 정도 섞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임영웅의 곡들은 이 구간에 잘 어울립니다. ‘이제 나만 믿어요’는 비교적 느린 템포의 발라드 트로트로, 무조건적인 믿음과 위로를 담은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메들리 속에 이 곡을 잠깐 끼워 넣으면, 방 안의 분위기가 잠시 조용해지면서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런 시간은 앞서 크게 웃고 떠들다가도, 한 번쯤 차분하게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또 다른 곡인 ‘사랑은 늘 도망가’ 역시 잔잔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멜로디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메들리의 흐름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도 좋고, 아예 이 두 곡 중 하나만 골라 짧게 핵심 부분만 부르는 방식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너무 길게 끌기보다는, 감정을 한 번 모았다가 다시 풀어낼 수 있을 만큼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불을 붙여 줄 최근 트로트 히트곡

잔잔한 곡으로 잠시 숨을 고른 뒤에는, 다시 박수를 유도하는 곡으로 전환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큰 인기를 얻은 곡들을 활용하면, 트렌디한 느낌까지 살릴 수 있습니다.

영탁의 ‘찐이야’는 이런 용도로 아주 적합한 노래입니다. 전주부터 강한 리듬이 깔리고,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같은 구절로 유명해지기도 한 가수라, 이름만 들어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찐이야~ 찐이야~” 하고 반복되는 후렴은 마치 추임새를 부르는 것처럼 들려서, 메들리 후반부를 다시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손을 위로 들고 같이 따라 부르다 보면, 처음보다 더 크게 웃으며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지막은 모두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으로

노래방 메들리를 마무리할 때 중요한 점은, “이제 끝이다”라는 느낌보다는 “아직도 흥이 남아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어렵거나 무거운 곡보다는, 단순한 가사와 멜로디를 가진 곡을 선택하는 편이 좋습니다.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는 이런 마무리용 곡으로 자주 선택됩니다. 후렴에 제목이 그대로 반복되고, 멜로디도 단순해서 처음 듣는 사람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고 다 같이 외치며 박수를 치면, 마치 하나의 합창처럼 방 안이 하나로 모이는 느낌이 듭니다. 긴 시간 메들리를 이어온 뒤에 이 노래로 정리하면, 노래방을 나설 때까지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메들리를 더 즐겁게 만드는 진행 요령

같은 곡이어도 어떻게 이어붙이고 부르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크게 달라집니다. 몇 가지 간단한 요령만 기억하면, 훨씬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메들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첫째, 곡 전체를 다 부르기보다 하이라이트 위주로 부르는 방식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전주를 너무 길게 듣기보다는 앞부분 몇 초만 듣고 바로 1절 후렴으로 들어가거나, 후렴만 부르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등, 템포를 빠르게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지루해질 틈이 줄어들고, 다양한 곡을 조금씩 맛보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둘째, 곡의 빠르기를 조절해 배치하면 좋습니다. 신나는 곡만 연달아 부르면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듣는 입장에서도 비슷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한두 곡 정도는 조금 느리거나, 감성적인 곡을 끼워 넣어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임영웅의 노래들이 여기에 어울립니다.

셋째, 남성 가수 곡과 여성 가수 곡을 번갈아 부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장윤정, 홍진영 같은 여성 가수의 곡과 박상철, 남진, 영탁 같은 남성 가수의 곡을 섞어 두면, 같은 사람 목소리만 계속 들리지 않아서 더 다채로운 느낌을 줍니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기에도 좋습니다.

넷째, 추임새를 의도적으로 유도하면 메들리가 훨씬 살아납니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후렴 나오면 다 같이 따라해요”라고 한마디만 해 두어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준비하게 됩니다. 중간중간 “짝짝짝”, “좋다”, “한 번 더” 같은 말을 넣어 달라고 부탁하면, 그냥 듣기만 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섯째, 노래를 부를 때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의자에만 가만히 앉아 부르는 것보다,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박수를 치거나 어깨를 흔들면서 부르면, 노래방이 작은 무대처럼 느껴집니다. 특별한 춤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리듬을 타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충분히 달라집니다.

이렇게 곡 선정과 순서, 그리고 진행 방식만 조금만 신경 써도, 익숙한 트로트 몇 곡으로도 충분히 멋진 메들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각자 좋아하는 곡을 추가로 끼워 넣어 자신만의 순서를 만들어보면, 노래방에서의 시간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