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리 안쪽에 작고 네모난 케이크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그중에서 밤 장식이 올려진 티라미수가 눈에 띄었습니다. 진한 커피 향 위로 고소한 밤 향이 살짝 올라오던 그 조합이 참 묘하게 어울렸습니다. 한 조각을 먹고 나서야 왜 사람들이 그 메뉴를 찾아다니는지 알 것 같았고, 다음 계절에도 또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매장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메뉴판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름조차 사라져 있었고, 직원분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안 나오는 메뉴”라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이후로 비슷한 맛을 찾아 이것저것 먹어봤지만, 그때 먹었던 그 조합이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집에서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중에 파는 티라미수와 밤 디저트를 참고하면서 하나씩 섞어보다 보니, 나름대로 입맛에 잘 맞는 밤티라미수가 완성되었습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그 느낌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자연스럽게 궁금해졌습니다. 왜 이런 메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또 어느 해에는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걸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밤티라미수는 왜 사라졌을까
한때 가을과 겨울이 되면 카페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밤티라미수는, 공식적인 영구 단종 발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특정 시즌에만 판매되다가, 어느 시점부터 새 시즌 메뉴로 대체되면서 눈에 띄지 않게 된 경우에 가깝습니다. 이런 현상은 스타벅스를 포함해 많은 카페 브랜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메뉴가 단종된 이유를 조금 더 차분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요소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절 한정 메뉴라는 특징
밤은 특히 가을과 겨울에 많이 떠올리는 재료입니다. 그래서 카페들도 이 시기에 맞춰 밤을 이용한 음료와 디저트를 내놓습니다. 밤티라미수 역시 이 흐름 속에서 나온 시즌 한정 메뉴에 가깝습니다. 일정 기간만 판매하고 다음 시즌에는 새로운 메뉴를 내는 방식은 카페 업계에서 이미 익숙한 전략입니다.
이런 시즌 메뉴는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 손님 입장에서는 매년 새로운 조합을 기대하게 됩니다.
- 매장 입장에서는 한정된 기간 동안 특정 재료를 집중적으로 사용해 운영을 계획하기가 수월합니다.
- 메뉴 수가 너무 많아져서 주방 동선이 복잡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밤티라미수도 이런 구조 안에서 가을·겨울에 등장했다가 시즌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준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밤이라는 재료의 특성
밤은 수확 시기가 뚜렷한 편입니다. 냉동이나 가공을 통해 1년 내내 쓸 수도 있지만, 제철에 비해 향과 식감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밤은 잘못 보관하면 맛이 쉽게 변하기 때문에, 전국 매장에서 일정한 품질로 제공하기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카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 밤 페이스트나 밤 조각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지
- 보관과 운반 과정에서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
- 판매량이 떨어지는 비수기에도 계속 재고를 유지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이런 요소 때문에 밤을 사용한 메뉴는 특정 계절에만 집중해서 내고, 나머지 시기에는 다른 재료로 만든 메뉴에 자리를 내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로운 메뉴를 위한 자리 만들기
카페 메뉴판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음료와 디저트마다 써야 하는 재료와 도구, 냉장 공간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무작정 메뉴를 늘리기보다는 정해진 숫자 안에서 교체해 가며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디저트는 유통기한이 짧고, 진열 공간도 한정되어 있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인기가 있던 메뉴라도, 새로운 시즌이 되면 잠시 빠지고 다른 메뉴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때 예전 메뉴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언젠가 형태를 조금 바꾸거나, 이름을 바꾸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습니다.
실제로 여러 카페 브랜드에서 과거에 잘 팔렸던 메뉴를 몇 년 뒤 다시 ‘리턴’이나 ‘재출시’라는 이름을 붙여 선보이기도 합니다. 밤티라미수도 그런 식으로 비슷한 콘셉트의 디저트가 나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런 부분은 매년 브랜드의 기획 방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확실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집에서 만드는 밤티라미수의 기본 아이디어
어떤 메뉴가 다시 나올지 기다리는 것도 즐겁지만,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은 전혀 다른 재미를 줍니다. 특히 티라미수는 기본 구조가 단순해서, 재료만 구할 수 있다면 집에서도 충분히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밤을 더해주면, 기억 속의 밤티라미수와 닮은 디저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진한 커피에 적신 과자나 빵을 바닥층으로 깔고
- 마스카포네 치즈와 생크림으로 만든 크림을 올린 뒤
- 그 크림에 밤 페이스트를 섞어 고소한 밤 맛을 더하고
- 층을 한두 번 더 쌓은 후 차갑게 숙성시키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코코아 파우더를 뿌리면 티라미수 특유의 향과 색감이 살아나고, 삶은 밤이나 조린 밤을 사이사이에 넣으면 식감이 훨씬 풍부해집니다.
밤티라미수에 들어가는 재료 살펴보기
재료 하나하나를 이해하면 응용하기가 편해집니다. 집에 있는 것들로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크림의 중심, 마스카포네 치즈와 생크림
티라미수의 핵심은 마스카포네 치즈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많이 쓰이는 치즈로, 부드럽고 담백한 맛 덕분에 디저트에 잘 어울립니다. 여기에 생크림을 더해 휘핑하면, 숟가락으로 뜨면 천천히 흘러내릴 정도의 부드러운 크림이 됩니다.
만약 마스카포네 치즈를 구하기 어렵다면, 크림치즈와 생크림을 섞어서 비슷한 느낌을 내기도 합니다. 다만 크림치즈는 약간 더 짭짤하고 새콤한 맛이 있기 때문에, 설탕 양을 약간 조절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밤 페이스트와 밤 조각
밤티라미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당연히 밤의 풍미입니다. 여기에는 주로 밤 페이스트나 밤 퓨레가 쓰입니다. 둘 다 기본적으로 삶은 밤을 으깨서 만든 것인데, 설탕과 버터가 들어간 제품도 있고, 거의 밤만 들어간 제품도 있습니다.
집에서 만들 때는 다음과 같은 재료들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시판 밤 페이스트 또는 밤 퓨레
- 달콤한 밤잼
- 마롱 글라세를 잘게 잘라 섞는 방식
- 직접 삶은 밤을 으깨서 설탕을 조금 넣어 사용하는 방법
여기에 잘게 다진 삶은 밤이나 조린 밤을 크림 사이에 뿌려주면,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씹는 재미가 더해집니다.
커피 시럽과 과자, 그리고 코코아 파우더
티라미수에서 커피 향은 빠질 수 없습니다. 에스프레소나 진하게 내린 커피에 설탕을 조금 섞어 시럽처럼 만든 뒤, 레이디 핑거라는 과자를 적셔 사용합니다. 이 과자는 속이 가볍고 스펀지처럼 생겨서, 커피 시럽을 잘 머금으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집에서 레이디 핑거를 구하기 어렵다면, 카스테라나 스폰지 케이크를 얇게 썰어 사용해도 됩니다. 다만 너무 오래 적시면 쉽게 부서지거나 지나치게 눅눅해질 수 있으니, 겉면만 살짝 젖을 정도로 짧게 담갔다가 꺼내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윗면에 뿌리는 코코아 파우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티라미수 특유의 쌉쌀한 맛을 담당합니다. 고운 체를 이용해 얇게, 하지만 전체가 충분히 덮일 만큼 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차근차근 만들어 보는 밤티라미수
이제 흐름에 맞춰 과정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각각의 단계에서 어떤 점을 주의하면 좋은지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커피 시럽 준비하기
먼저 차갑게 식힌 커피에 설탕을 섞습니다. 에스프레소를 쓸 수 있다면 향이 더 진해지고, 일반 드립 커피를 쓴다면 평소보다 조금 더 진하게 내려 사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이때 알코올이 들어간 리큐르를 넣어 풍미를 더하는 레시피도 있지만, 취향에 따라 완전히 빼도 괜찮습니다. 리큐르를 넣지 않아도 티라미수의 기본 맛은 충분히 살아납니다.
2. 밤이 들어간 마스카포네 크림 만들기
크림을 만드는 방법에는 약간의 변형이 있지만, 기본 흐름은 비슷합니다.
- 차가운 마스카포네 치즈를 부드럽게 풀어줍니다.
- 여기에 밤 페이스트를 넣고 덩어리가 남지 않게 잘 섞어줍니다.
- 다른 그릇에 생크림과 설탕을 넣고, 부피가 두 배 정도로 되며 자국이 남을 만큼 휘핑합니다.
- 휘핑한 생크림을 마스카포네와 밤이 섞인 반죽에 나누어 넣고, 주걱으로 아래에서 위로 떠 올리듯이 섞어줍니다.
이 과정에서 너무 세게 섞으면 크림이 죽처럼 흐르거나, 반대로 뭉쳐서 부드러운 느낌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손목에 힘을 조금 빼고, 천천히 섞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계란 노른자를 넣는 방식도 많이 쓰입니다. 노른자를 설탕과 함께 중탕으로 살짝 데워서 농도를 올린 뒤, 마스카포네와 섞으면 더 진하고 부드러운 맛이 납니다. 다만 계란 사용이 부담스럽다면, 노른자를 빼고 생크림의 양을 조금 늘려도 충분히 맛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3. 층 쌓기와 밤 조각 더하기
준비가 끝났다면 이제 조립 단계입니다.
- 먼저 용기 바닥에 커피 시럽을 살짝 적신 레이디 핑거나 카스테라를 가지런히 깔아줍니다.
- 그 위에 밤 마스카포네 크림을 넉넉하게 올려 평평하게 펴줍니다.
- 잘게 썬 삶은 밤이나 조린 밤을 중간중간 올려주면 식감과 밤 향이 더 살아납니다.
- 그 위에 다시 커피에 적신 과자를 올리고, 또 크림을 올리는 식으로 2~3층 정도 쌓습니다.
마지막 층은 크림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코코아 파우더를 뿌렸을 때 색 대비가 예쁘게 나옵니다. 투명한 유리 용기를 사용하면 층이 한눈에 보여서, 보기에도 만족감이 커집니다.
4. 냉장 숙성과 마무리
티라미수는 막 만든 직후보다, 냉장고에서 충분히 쉬게 했을 때 맛이 훨씬 좋아집니다. 커피에 적셨던 과자와 크림이 서로의 맛을 나누어 가지면서, 전체가 하나의 디저트처럼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최소 4시간 이상은 냉장 보관을 해주는 것이 좋고, 하루 정도 두었다가 먹으면 맛이 더욱 깊어집니다. 서빙 직전에 고운 체를 이용해 코코아 파우더를 윗면에 뿌리고, 남은 밤 조각이 있다면 위에 몇 개 올려 장식해주면 시각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입맛에 맞게 변형해 보는 방법
기본 레시피에 익숙해지면, 조금씩 변형해 보면서 자신만의 밤티라미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재료의 양을 과감하게 조절해 보거나, 다른 재료를 살짝 섞어 보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 밤 맛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면, 밤 페이스트의 비율을 늘리고 설탕 양을 줄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반대로 커피 향을 더 살리고 싶다면, 커피를 조금 더 진하게 내리거나, 시럽에 녹여 넣는 설탕의 양을 줄여 쌉쌀한 맛을 강조해 볼 수도 있습니다.
카카오 향을 좋아한다면, 코코아 파우더를 한 번만 뿌리지 않고, 층을 쌓는 중간중간에도 얇게 뿌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입 먹을 때마다 밤, 커피, 초콜릿이 번갈아가며 느껴져서, 조금 더 복합적인 맛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레시피를 틀로 삼고, 그 안에서 내 입맛에 맞게 숫자를 바꾸거나 재료를 바꾸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디저트가 하나씩 생기게 됩니다. 메뉴가 사라졌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 아쉬움 덕분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게 되는 셈이기도 합니다.